제가 다닌 신학 대학원에서는 학기마다 사목 실습이란 과목이 있었습니다. 수요일 오후와 저녁에 배정된 사목 실습 시간에는 교실 안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학생 각자가 배정된 곳으로 가서 봉사하고 일했습니다. 제
경우에는 대학원 1학년 때는 빈민가에 있는 무료 급식소에서, 그다음
해에는 요양 병원에서 실습했습니다. 요양 병원에서 저의 주된 활동은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말 벗이 되어드리는 것과
기도를 함께하며, 봉성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일을
시작하고 한 8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휠체어에 앉아 항상
절 따스한 미소로 맞이해주셨던 한 할머니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그 날, 할머니께 봉성체를 해드리고 나니 할머니께서 제 손에 입을 맞추시면서, “고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더없이 행복한 미소와 함께, “저는 집으로 갑니다. 잘 지내세요.”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저는 “아, 할머니께서 죽음을 앞두고 계시니까, 가족들이 집에 모시고 마지막을
함께하시려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일정을 다 마친
후, 저를 담당해주시고 계신 직원분께 그날 만나 뵈었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가족들이 할머니를 집으로 모시겠다는 요청을 한 적은 없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직원분과 저는 잠시 침묵 중에 있다가, 할머니께서 당신 가족의 집을
말한 것이 아니라, 저 위의 다른 집, 영원한 하느님의 따스한
품을 이야기했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고통과 죽음에 내버려 두시지 않으리라는
강한 희망을 그날 할머니에게서 똑똑히 보았습니다. 또한 부활의 삶, 영원한
생명의 시작은 우리의 죽음 이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상에서부터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 (요한 6,37)과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요한 6,47)란 주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했고, 그분께 온전히 의지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계셨고, 부활의 삶에 동참하고 계셨음을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비록 기력이 쇠하고 고통 중에 있을지라도, 주님의 사랑과 생명은
이미 할머니께 있었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오늘 부활 성야 전례는 주님 부활의 삶, 영원한 생명의 삶에 뛰어들라고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다른 무엇이
아닌, 참 생명을 얻으라고 우리에게 손짓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살아있음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바라보게 되지요.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 이 거룩한
파스카 신비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진 생명은 우리를 뒤흔듭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을 때 ‘갑자기 큰 지진을 겪은 것’처럼
말입니다 (마태 28,2).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기 전에
일어난 이 큰 지진은 심장이 쿵쾅대는 생명의 약동과도 같습니다. 죄와 이기심, 고통과 죽음이 생명은 멈추게 한 것처럼 보였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생명은 다시 깨어났고, 새롭게 고동치고 있습니다. 그분의
고동치는 심장 박동은 우리에게 들려왔고, 그 박동 소리는 우리의 심장을, 우리의 생명을 새로운 희망으로 뛰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 거룩한 신비를 기념하는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를 생명의 삶에 동참하라고 초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상의 삶 가운데에서 이미 영원한
삶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생명이신 그분께 우리의 삶을 내어 맡기십니다. 우리의 죄와 고통을 함께 지시고, 죽음을 이기신 그분께 기꺼이 희망을 두는 것은 영원한 생명의 첫 시작임을 마음 속에 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양명식 대건 안드레아